러닝화 20만원 훌쩍, 참가비 껑충…더는 가성비 운동 아닌 달리기
달리기 15년차 직장인 김아무개(48)씨는 팬데믹 때 잠시 중단됐던 마라톤 대회에 다시 나가보려고 했다가 깜짝 놀랐다.
코로나19 전만 해도 10㎞ 코스 참가비는 통상 3∼5만원 수준이었는데, 이제 7만원 밑으로는 찾아보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 돈 주고 대회 나가느니, 그냥 동네에서 혼자 뛰려고요.”
한때 ‘가성비’ 운동으로 여겨졌던 달리기가 최근 인기를 얻으면서, 주요 마라톤 대회 참가비가 일제히 올랐다.
가장 대표적인 마라톤 대회인 ‘춘천마라톤’은 2019년만 해도 참가비가 일괄 5만원이었는데,
2022년에 재개하면서 10㎞ 코스 참가비를 6만원으로 올렸고 지난해에는 1만원 더 오른 7만원이 됐다.
2019년 5만원이었던 ‘서울마라톤(동아마라톤)’도 올해 7만원으로 올랐다.
지난 3일 열린 ‘제이티비시(JTBC)서울마라톤’의 10㎞ 참가비는 7만원이었고 지난해까지 있었던 사전접수 1만원 할인 혜택을 없앴다.
이런 가파른 가격 상승에도 마라톤 신청은 이른바 ‘피케팅’(피를 튀길 정도의 치열한 티케팅)을 방불케 한다.
마라톤 신청에 접속이 폭주하면서 서버가 장애를 일으키는가 하면,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마라톤 참가권을 웃돈 주고 거래하는 일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오래전부터 달리기를 했던 이들은 비용 상승의 한 원인으로 ‘러닝 열풍’을 꼽기도 한다.
값비싼 달리기용품 탓에 ‘진입장벽’을 느낀다는 입문자들도 있다. 올해 여름부터 달리기 시작한 이아무개(34)씨는
몇 달 전 러닝화 전문점을 찾았다가 20만원이 넘는 카본화를 추천받고 덜컥 사버렸다.
이씨는 “뭣 모르고 사긴 했는데 고작 5∼10㎞ 뛰면서 이렇게 비싼 신발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5만∼6만원짜리면 충분했을 것 같다”고 했다.
필수 장비인 러닝화를 넘어서 달리기 전용 스마트워치, 오픈형 이어폰, 고글, 모자, 러닝조끼 등 달리기에
필요하다는 ‘필수템’의 범위가 확장되는 분위기에 부담을 느끼는 이들도 적지 않다.
올 초 ‘러닝크루’에 들어간 직장인 조아무개(33)씨도 “다 합쳐서 100만원 넘는 장비와 옷을 장착하고 뛰는 사람이 크루에 한둘이 아니다”라며
“‘러너라면 이 정도는 사야지’하는 분위기가 부담스러울 때가 꽤 있다”고 말했다.
달리기를 오래 지속하려면 ‘달리기의 근본’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0년 넘게 크고 작은 마라톤 대회에 꾸준히 참가해온 장아무개(58)씨는 “원래 마라톤 뛰던 중장년층은
젊은 사람들한테 밀려 대회 신청조차 쉽지 않다 보니, 이제 산에 다닌다”며 “달리기는 기본적으로
고독한 운동이라 군중 심리에 휩쓸릴 이유가 없다. 이 유행 또한 지나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