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치면 100배 물어내야"…일부 무인점포 '합의금 장사' 눈살
최근 무인점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고문이다. 경각심을 주기 위한 취지에서 적은 경우가 많지만 관련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관들은 다른 의도가 숨어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범죄가 일어나면 경고문에 적힌 것과 같이 과도하게 큰 합의금을 요구하는 일이 잦아서다.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경기 남부지역 한 경찰서 형사과에서 근무하는 A 경감은 "어린 학생이 무인점포에서 아이스크림을 한 개 훔치자, 업주가 부모에게 200만∼300만원의 합의금을 받아내는 사례들이 있었다"며 "물론 피해자가 일정 수준의 합의금을 요구하는 것은 상식적이지만, 지나치게 큰 금액을 부르는 일이 계속되니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 6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한 무인점포에 내걸린 '최근 변상 및 고발 사례'라는 제목의 안내문 사진이 올라오며 논란이 됐다. 사진 속 안내문에는 "초등학생: 합의금 100만원, 학교 통보", "중학생 및 성인: 합의금 200만원, 형사 고발 조치", "성인: 학교 및 직장 통보, 형사 고발 조치, 합의금 300만원" 등 사례가 나열돼 있다.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이런 문제와 관련해 "자제력이 부족한 어린애들이 저지른 일을 두고 저러는 건 옳지 않다", "절도범이 잘못한 게 맞지만, 최소한의 방범 장치도 달지 않고서는 경찰력을 동원해 합의금을 타내는 건 또 다른 문제"라는 등의 반응이 나왔다.
일부 업주가 '합의금 장사'라는 말처럼 과도함 금액을 부르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수사기관이 처벌 수위를 정하는 데 있어서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점 때문이다.
보통 소액의 물건을 훔치는 등의 경미한 범죄(20만원 이하의 벌금, 구료, 과료에 처하는 사건)를 저질렀다가 경찰에 적발됐을 경우 성인은 '경미범죄심사위원회'에, 촉법소년이 아닌 미성년자는 '선도심사위원회'에 회부된다. 두 위원회는 죄질이 경미하거나 피의자가 사회적 약자인 경우 심사를 통해 처분을 감경해주기 위해 마련됐다.
위원회 심사 결과에 따라 형사 입건된 피의자 신분이면 전과가 남지 않는 약식재판인 즉결심판에 넘겨지고, 입건 전이면 훈방 조처되는 방식으로 감경받을 수 있다. 경찰이 두 위원회에 회부할 대상자를 정하는 과정에서 주요하게 고려하는 기준 중 하나가 바로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다.
경찰청 훈령이 정하는 경미범죄심사위원회 대상자 선정의 참작 기준을 보면 초범인지, 생계형·우발적 성격의 범죄인지, 신체·신분·연령상 참작 사유가 있는지 등 여러 항목이 나와 있는데 여기에는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 또한 명시돼있다.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업주들은 상대방에게 이러한 내용을 언급하며 과도한 액수를 부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경찰이 조사 과정에서 무리한 합의금 요구 행태를 접해도 이를 직접적으로 제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무인점포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문제가 되풀이된다면 소액 절도사건 수사 및 종결에 과도한 경찰력이 투입되는 등의 행정 소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무리한 합의금 요구 행태에 제동을 걸고 각 무인점포의 방범 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