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는 왜 ‘무체급 경기’에서 ‘체급 경기’가 됐나
[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238] 유도는 왜 ‘무체급 경기’에서 ‘체급 경기’가 됐나
가노와 그의 도장인 ‘강도관(講道館, 코도칸) 유도’에 의해 유도는 일본 이민자가 많은 미국, 브라질, 캐나다 등은 물론 독일, 영국 등으로 보급됐다. 1940년부터 프랑스에서 카와이시 교수가 엔지니어인 모셰 펠덴크라이의 도움을 받은 유도는 세계화된 경기종목으로 변형됐다.
1951년 이탈리아 알도 토르티를 첫 회장으로 임명, 창립한 국제유도연맹은 1956년 유도 발상지 일본 도쿄에서 제1회 세계선수권대회를 개최했다. 1961년 파리 제3회 세계선수권대회때까지 유도는 체급 구별없이 경기를 가졌다. 이는 가노가 처음 유도를 창시할 때의 기본 정신을 지키려 했기 때문이다. 왜소한 체격으로도 덩치가 큰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는 종목의 전문성, 차별성을 유지하려 한 것이다. 유도는 걸어 넘어뜨리는 것이 기본이다. 유도에 숙달하지 않은 사람은 유도를 익힌 사람에게 쉽게 제압될 수 있다. 초창기 유도가 체급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은 이런 유도의 기본기를 보여주기 위한 때문이었다.
하지만 복싱, 레슬링 등 이미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된 다른 격투기 종목처럼 올림픽 종목이 되기 위해선 체계적인 경기 운영이 필요했다. 체급별 종목으로 분류해 효율적인 경기를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유도는 1964년 도쿄 올림픽부터 처음 정식종목이 됐다. 아시아 스포츠 종목으로 처음 올림픽 정식종목이 된 유도는 도쿄 올림픽에서 남자 68kg 이하, 80kg 이하, 80kg 이상, 무제한급 등 4개 종목으로 시작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7개 제급으로 늘어났으며,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여자 종목이 추가돼 현재 남녀 7개 체급과 혼성전 등 총 15개 세부 종목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