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챔피언 구단도 '논두렁 잔디'…日도 놀랐다, 국제망신살로
A매치 기간 축구대표팀이 안방 경기를 치른 서울월드컵경기장을 포함해 국내 K리그1 경기장 잔디는 올여름 유독 병들었다. 유례없는 장기 폭염으로 잔디 생육에 어려움을 겪은 것도 크나 근본적으로 경기장 환경이 문제다.
국내 대부분 축구전용경기장은 2002 한·일월드컵에 맞춰 지어졌는데 지붕을 둔 돔구장 형태가 많다. 겉보기엔 아름다운 경기장이나 대부분 지하에 뒀다. 통풍 등 잔디 생육과 관련한 과학적 접근이 이뤄지지 않은 채 설계됐다. 또 유럽에서 주로 사용하는 켄터키 블루그래스를 들여왔다. 이는 한지형 잔디로 고온다습한 국내 기후에 견디지 못해 훼손이 심각해졌다.
지난해까지 K리그1 2연패를 차지한 ‘챔피언 구단’ 울산HD의 홈구장인 울산문수경기장 상태도 매우 심각하다. 18일 열린 가와사키 프론탈레(일본)와 경기는 K리그가 최악의 잔디 환경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국제적으로 홍보하는 꼴이 됐다. 국제 망신과 다름 없다.
전반 14분 울산 수비수 김영권은 수비 지역에서 롱 킥을 시도할 생각이 없어 보였는데 자신에게 오던 공이 울퉁불퉁한 잔디로 튀어올랐고 상대가 압박하자 전방에 길게 내보냈다. 2분 뒤 윙어 김민준은 오른쪽 터치 라인 부근에서 드리블하다가 공이 원하는대로 구르지 않으면서 빠뜨렸다.
가와사키 선수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오니키 토루 감독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공을 지면에 두고 플레이하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잔디 상태로) 서로 실수가 많이 나오는 어려운 경기였다”고 말했다.
일본은 한국보다 더 고온다습하다. 그러나 여러 경기장은 그라운드 설계 과정에서 냉, 온수기 등을 설치하는 등 과학적으로 접근해 한국보다 우수한 잔디를 보유하고 있다. 가와사키에서 9시즌째 활약 중인 한국 국가대표 수문장 출신 정성룡은 “지난해에도 (울산에서) 뛴 적이 있는데 더 안 좋아졌다. 가장 큰 건 선수 부상 염려”라고 짚었다.
프로 선수가 자기 기량을 100% 발휘하지 못하는 환경에서 팬과 마주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날 경기는 후반 9분 마르시뉴가 결승골을 넣은 가와사키가 승리를 거뒀으나 양 팀은 너나할 것 없이 최악의 잔디 상태로 제 기량을 펼치지 못한 것에 볼멘소리했다.
울산 김판곤 감독은 “(이런 환경에서) 선수에게 뭐라고 하기엔 공정하지 않다”며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경기했으면 한다”고 아쉬워했다. 오니키 감독은 “프로 팀간의 경기는 승부가 걸려 있을 뿐 아니라 매번 관중에게 최고의 플레이를 보여야 한다. 그래서 오늘 아쉽다”고 목소리를 냈다.
울산 역시 경기장 관리 주체는 시설관리공단이다. 시설팀 등 20여 명에 가까운 관계자가 그라운드 개선 작업에 애쓰고 있으나 ‘논두렁 잔디’에 관한 근본적인 대책이 없다. 울산 관계자는 “공단 측과 지속해서 잔디 문제를 얘기하고 있다. 최대한 개선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