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최초 부자(父子) 우승 진기록
"제가 무슨 복을 타고났는가 모르겠습니다."
해태 타이거즈 우승 포수 정회열(56) 동원대 감독이 같은 구단에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뤄낸 아들 정해영(23·KIA 타이거즈)의 성장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KIA는 지난 28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펼쳐진 2024 신한 SOL 뱅크 KBO 포스트시즌(PS) 한국시리즈(7전 4선승제) 5차전에서 삼성 라이온즈에 7-5로 승리하고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우승을 차지했다.
2017년 이후 7년 만이자 타이거즈 역사상 12번째 우승이었다. 전신인 해태 시절 1983년,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 1991년, 1993년, 1996년, 1997년 등 9번의 우승을 경험했고, 2001년 KIA로 이름을 바꿔서도 2009년, 2017년, 2024년 등 12번 한국시리즈에 올라 모두 정상에 오르며 타이거즈 불패 신화를 이어갔다.
마지막 순간에는 마무리 정해영이 있었다. 정해영은 그보다 앞선 8회초 2사 만루 위기에 등판해 왜 자신이 클로저인지 입증했다. 이재현과 승부에서 2구 만에 유격수 뜬공으로 돌려세워 위기를 넘겼고, 9회초에도 마운드에 올라 삼진 2개와 함께 삼자범퇴로 깔끔하게 마무리하면서 1⅓이닝 2탈삼진 무실점으로 KIA의 승리를 매조지었다.
그 장면을 포수 후면석에서 지켜본 아버지 정회열 감독이다. 우승 직후 만난 정회열 감독은 "사실 8회초 만루가 되기 전에 나올 거라 생각했다. 만루에 나오길래 초구가 중요하다고 봤는데 공에 힘이 있었다"고 돌아봤다.
실감하지 못하던 마무리로서 정해영의 매력도 확실히 알게 됐다. 그동안 정 감독은 아들 정해영이 지난 4월 24일 고척 키움 히어로즈전에서 KBO 리그 최연소 100세이브, 4년 연속 두 자릿수 세이브를 달성하는 등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음에도 쉽게 만족하지 못했던 사람 중 하나였다. 일례로 정해영이 2021년 뛰어난 성적을 거둔 뒤 2년간 잠시 주춤하자, 오프시즌 중 일본 돗토리 트레이닝 센터로 보내려는 등 분발을 요구한 엄한 아버지이기도 했다.
정 감독은 "그동안은 포수 후면석에서 (한국시리즈를) 못 보다가 마침 오늘 딱 뒤에서 처음으로 실감 나게 봤는데 왜 (정)해영이가 마무리인가를 새삼 느꼈다. 보통 마무리는 직구가 시속 155㎞는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해영이가 140㎞ 후반의 직구로도 버티는 이유가 있더라. 구속이나 무브먼트가 확실히 다른 게 보였다"고 미소 지었다.
정해영이 KIA의 12번째 우승을 견인하면서 KBO 역사상 최초로 한 구단 소속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한 부자(父子)라는 진기록이 탄생했다. 정 감독은 과거 광주일고-연세대 졸업 후 1990년 KBO 신인드래프트 1차 지명으로 해태에 입단했다. 이후 1997년까지 타이거즈 포수로 활약하면서 4번의 한국시리즈 우승(1991년, 1993년, 1996년, 1997년)을 함께했고 1993년과 1996년에는 각각 선동열, 이대진과 함께 헹가래 포수로서 마지막을 장식했다.
정 감독이 타이거즈에 지명받은 지 정확히 30년 뒤에 둘째 아들 정해영이 30년 만에 같은 타이거즈에 입단해 화제가 됐다. 그리고 이번 삼성과 한국시리즈는 KIA로서는 31년 만의 클래식 매치였는데, 공교롭게도 이전 대결은 정 감독이 주전 포수로서 맹활약한 시리즈이기도 했다.
우승 후 정해영은 "아빠 우승이에요!"라는 문구와 함께 개인 SNS에 본인과 아버지 정 감독의 한국시리즈 우승 당시를 합성한 사진을 올리면서 기쁨을 만끽했다.
정 감독 역시 "그런 기록이 있는 줄 몰랐다. 보다 보니 1993년 한국시리즈도 생각이 났다. 당시에 삼성 배터리의 틈을 파고들어 도루도 많이 했던 기억이 있다"며 "어쨌든 나는 당시 조연으로서 우승한 거지만, (정)해영이는 주연급으로 해낸 것 같아 솔직히 내가 우승했을 때보다 더 기쁘다"고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
정해영의 시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내달 시작되는 2024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 12 대회 엔트리에 포함됐고, 30일부터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리는 훈련에 참여한다.
아버지는 이번 한국시리즈와 프리미어12 대회를 통해 아들이 한 번 더 발전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정 감독은 "아직도 (정)해영이는 내게 아기 같다. 그래서 참 감격스럽고 대견하고 고맙다"면서도 "해영이는 앞으로 한 번 정도는 더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되면 선수로서 입지도 달라질 것이고 KIA에도 상당한 이바지를 할 수 있을 텐데 그럴 수 있게 더욱 잘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러면서 "사실 내가 과거 선동열 감독님과 함께했던 우승 세리머니를 한번 재현시켜보고 싶었다. 혹시나 좋은 분위기에 설레발을 하는 것 아닌가 해서 속으로만 담아뒀는데 올해 우승을 해냈으니, 내년에도 도전하게 된다면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고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