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4.29 폭동 1
1991년 3월 3일 LAPD 소속 경찰관 4명은 210번 프리웨이를 타고 서쪽방면 80마일로 운전중인 흰색 현대 포니엑셀 승용차를 추격전 끝에 세운다. 경찰은 술에 취한 운전자 로드니 킹을 끌어냈지만, 그는 경찰들에게 폭력을 행사하여 경찰은 이에 몽둥이로 56회나 폭행하는 등 과잉 대응이 일어나게 되고 이 장면을 인근 주민이 비디오 촬영해 방송사에 제보를 하게 된다.
당시 킹은 강도, 폭행, 절도 등의 범죄를 저지르고 가석방 된 상태였는데, 만약 자신이 술에 취해 경찰에 과속으로 적발될 경우 가석방 조건에 걸려 도로 수감되어야만 했기 때문에 거칠게 행동했다고 밝혔다.
로드니 킹은 경찰관의 폭행으로 청각장애와 뇌 손상과 11곳이 골절되어 PTSD를 겪게 되었고 이에 3월 15일에 킹을 구타한 경찰관 4명은 기소되고, 7월 9일에 경찰 위원회가 과잉폭력 인정 보고서를 발표했다.
한편, 3월 16일 사우스 LA에 한인이 운영하던 엠파이어 리쿼에서 두순자-라타샤 할린스 총격 살해 사건이 일어난다.
11월 15일 판사 조이스 앤 칼린(Joyce Ann Karlin)이 두순자씨에게 400시간 사회 봉사명령 및 500달러 벌금, 5년간 보호관찰 판결을 내리면서 4.29 폭동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타 커뮤니티와의 교류가 없었던 당시 한인사회에 여러가지 단적이 요인이 겹치면서 흑인사회의 불만이 고조되며 한인사회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10여개월이 지난 1992년 2월 5일 로드니 킹 사건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고 4월 29일에 시미밸리 지방법원에서 내린 판결은 경찰관 4명 중 3명은 무죄, 1명은 재심사로 결정되면서 4.29 폭동의 도화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