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ABS 없는 곳에서 행복하렴… KBO 퇴출 1호가 갑자기 MLB 복귀 가능성?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SSG는 올 시즌을 앞두고 새 외국인 투수로 로버트 더거(29)를 영입했다. 메이저리그 경력이 화려한 선수는 아니었지만 지난해 트리플A에서는 좋은 활약을 한 선수였다. 강력한 파이어볼러는 아니지만 KBO리그에서는 효율적으로 통할 만한 싱커, 그리고 다양한 변화구를 갖췄다.
스프링캠프 때까지만 해도 호평 일색이었다. 제구도 비교적 안정되어 있고, 다양한 변화구를 존 안으로 던질 수 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흙속의 진주를 캘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곳곳에서 피어 올랐다. 그러나 정작 시즌에 들어가자 자신의 장점을 하나도 보여주지 못한 채 표류했다.
더거는 시즌 6번의 선발 등판에서 22⅔이닝을 던지는 데 그치며 승리 없이 3패 평균자책점 12.71로 부진했다. 피안타율은 0.366, 이닝당출루허용수(WHIP)는 무려 2.07에 이르렀다. 4월 6일 창원 NC전에서는 3이닝 12피안타 14실점(13자책점)으로 폭삭 주저앉으며 최악의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이런 투구가 이어지자 '더거'라는 이름은 못 던지는 투수의 대명사가 됐다.
결국 드류 앤더슨과 콘택트가 된 SSG는 일찌감치 더거를 퇴출하기로 하고 자신들의 잘못을 깔끔하게 인정했다. 더거가 부진했던 것은 밋밋한 구위도 있었지만 올해 KBO리그에 도입된 자동 볼 판정 시스템(ABS)이 더거의 특성과 맞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그렇게 못 던질 투수는 아니었는데 ABS와 상성이 맞지 않자 장점을 완전히 잃은 채 어쩔 줄 몰랐다.
더거는 우타자 몸쪽으로 살짝 휘어져 들어가는 싱커를 잘 던지는 투수다. 이 싱커로 카운트를 잡거나 혹은 빗맞은 타구를 유도한다. 하지만 싱커가 정말 공 반 개에서 하나 차이로 빠지면서 볼이 됐다. 더거가 이 영점을 조절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평생을 던진 스타일을 금세 바꾸기가 힘들었다. 존에 넣는 포심은 KBO리그에서도 경쟁력이 높지 않았고, 모든 투구 템포가 꼬인 끝에 퇴출의 비운을 맛봤다.
그런 더거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지난해 트리플A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던 실적이 남아있고, 올 시즌을 몸 상태 문제없이 준비한 선수였다. KBO리그에서 던진 이닝은, 어쩌면 메이저리그 팀들이 볼 때 적당한 수준이었다. 보통 KBO리그에서 퇴출된 선수들은 그해를 쉬고 다음 해 메이저리그 재도전에 나서는 경우가 많은데 더거는 너무 일찍 퇴출된 덕에 오클랜드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할 수 있었다. 어차피 SSG와 약속한 연봉은 다 받는 터였다.
그런데 ABS가 없는 마이너리그에서 더거는 다시 반등하고 있다. 계약 후 팀의 트리플A팀에 배속된 더거는 시즌 4경기(선발 3경기)에 나가 1승 평균자책점 3.24로 선전하고 있다. 피안타율은 0.206으로 떨어졌고, WHIP도 1.20으로 안정감이 있다. 6이닝 이상을 던지는 이닝이터로서의 모습을 못 보여주고 있지만 KBO리그보다 오히려 전체적인 수준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 트리플A에서 더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타고투저 성향이 뚜렷한 퍼시픽코스트리그(PCL)에서 거둔 성적이라 의미가 크다.
오클랜드는 선발 투수가 항상 필요한 팀이다. 메이저리그 팀에 확실한 선발 투수가 별로 없어 충원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팀에 있는 애런 브룩스의 경우도 현재 더거보다 더 좋지 않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시즌 중반 콜업돼 네 번의 선발 등판을 했다. 더거도 현재 성적을 이어 가면서 이닝 수를 불린다면 꼭 선발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보직에서 콜업 대상자가 될 수도 있다.
더거는 2019년 마이애미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고, 2021년 시애틀에서는 12경기(선발 4경기)에 나갔고 2022년에는 탬파베이와 신시내티를 거치며 4경기에 나간 경험이 있다. 메이저리그 통산 27경기(선발 13경기)에서 아직 승리 없이 7패 평균자책점 7.17을 기록 중이다. 더거가 KBO리그에서의 조기 퇴출을 전화위복으로 삼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