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픽 쓰러지는 '50도 폭염'…"우리가 알던 여름이 아니다"
열돔 갇힌 미국, 40도 웃도는 폭염
17일(현지시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기온이 35도까지 오른 가운데 주민들이 훔볼트공원 물가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지구촌 곳곳에서 때이른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미국은 인구 절반 이상이 40℃ 안팎의 폭염 영향권에 놓였고 그리스에선 폭염에 산책하던 관광객들의 사망이 잇따랐다. 지구가 12개월 연속 역대 가장 더운 달을 보내고 있는 가운데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은 점점 더 잦아질 전망이 나온다.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한 전 지구적 노력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1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가디언 등 외신을 종합하면 미국 기상청은 중서부를 강타한 기록적 폭염이 동북부로 확장하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선 기록적 무더위가 이번 주 내내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날 시카고 기온은 35℃를 찍었고, 신시내티는 39℃까지 올랐다. 시카고 기상청의 제이크 페트르 수석 예보관은 "6월 중순 중서부 폭염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 폭염의 기간은 충격적으로 길다"며 "잔인한 여름의 예고편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상 데이터 제공업체인 웨더벨애널리틱스는 이번 주 미국 인구 약 2억6500만명이 최소 32도 이상의 폭염의 영향 아래 놓인다며 이 중 다수는 40도 안팎의 더위에 시달리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뉴욕 시민들은 더위를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며 "기후변화로 인해 폭염이 심해져 예년의 여름과는 다른 만큼 앞으로 다가올 더위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서양과 맞닿은 메인주와 매사추세츠주 등 일부 지역은 습도까지 높아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릴 전망이다.
이번 폭염은 오하이오 밸리와 오대호 지역에서 점점 위력을 키우는 열돔이 북동쪽으로 확장하며 이동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열돔이란 대기권에서 발달한 고기압이 정체하면서 뜨거운 공기를 대지에 가둬두는 현상을 말한다. 지난주 캘리포니아, 네바다, 애리조나, 유타, 텍사스 등 미국 서부와 남부에서도 열돔에 따른 무더위로 역대 최고 기온 기록이 잇따라 깨졌다. 세계에서 가장 더운 곳으로 알려진 캘리포니아 데스밸리에선 지난 6일 최고기온이 50도를 찍기도 했다. 고온 건조한 기후 영향에 캘리포니아 곳곳에선 산불 피해도 확산 중이다.
12일(현지시간) 그리스 제2의 도시 테살로니키에서 한 여성이 휴대용 선풍기로 더위를 식히고 있다.
때이른 폭염은 미국만의 얘기가 아니다. 대서양 건너 그리스에선 40도 넘는 무더위에 이달 들어 관광객 6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콘스탄티나 디모글리도우 그리스 경찰 대변인은 "매년 관광객 실종이 발생하지만, 올해는 폭염 영향에 길을 잃은 이들이 더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최대 성지 메카에선 14명의 순례자가 극심한 햇빛과 열기에 노출돼 목숨을 잃었다. 멕시코에선 한낮 최고기온이 45도에 육박하는 폭염에 지친 원숭이들이 나무에서 떨어져 죽었다. 인도 역시 지난달부터 살인적 무더위가 이어지면서 160명 넘는 사망자가 나왔다.
전문가들은 지구 온난화가 이어지면서 극심한 무더위와 그에 따른 가뭄, 산불, 폭우 등 기상 재해가 더욱 잦아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유럽연합(EU)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연구소(C3S)에 따르면 이미 지구는 지난달까지 12개월째 전례 없는 더위를 견디는 중이다. 12개월 연속 역대 평균 기온을 갈아치우면서다. 카를로 부온템포 C3S 이사는 "이 같은 기록은 충격적이지만 놀랍진 않다"면서 "앞으로 더 나쁜 일은 계속 일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지구 온난화를 초래하는 화석 연료 사용을 대폭 줄이지 않는 한 가장 무더웠던 이번 달이 미래엔 비교적 추운 달로 기억될 것"이라고 경고했다.